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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문법이 바뀌다: 효율에서 ‘케미’로
Research
문제의 실마리는 늘 '작은 대화'에서 발견된다
2026.01.08
3줄 요약
  • 문제의 실마리는 공식적인 회의보다, 소수의 동료가 나누는 정제되지 않은 작은 대화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이런 대화에는 결과가 아니라, 판단이 만들어진 배경과 맥락이라는 ‘휴먼 디테일’이 담겨 있습니다.
  • 작게 모인 소통은 문제를 바로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됩니다.

*이 글은 '소통의 문법이 바뀌다: 효율에서 '케미'로'의 두 번째 아티클입니다.

 

① 말은 오갔는데, 왜 일은 안 굴러갈까?

② 문제의 실마리는 늘 '작은 대화'에서 발견된다

③ 오피스 공간에 '휴먼 커넥션'을 심는 법


문제는 언제 풀리기 시작하는가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는 순간은, 의외로 공식적인 회의 자리에서가 아닙니다.

팀 전체가 모인 회의에서는 방향이 정리되는 경우는 많지만, 막혀 있던 지점이 풀리는 계기는 대개 그 이후에 찾아옵니다. 회의가 끝난 뒤, 비슷한 일을 해본 동료 두세 명과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 속에서, 회의 자리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아, 그때는 이런 제약이 있었어요.”

“사실 그 선택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죠.”

이런 말들은 대부분 회의록에 남지 않습니다. 미리 준비된 안건도 아니고, 모두에게 공유할 만큼 정제된 표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판단의 배경은, 오히려 이런 정리되지 않은 대화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의 실마리는 늘 '작은 대화'에서 발견된다
회의가 끝난 뒤, 비슷한 일을 해본 동료 두세 명과 나누는 정제되지 않은 대화에서 오히려 문제의 실마리가 드러난다.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휴먼 디테일’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료나 검색만으로는 맥락이 잘 이어지지 않는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미 어떤 선택이 내려졌고 결과도 나와 있지만, 왜 그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 건네는 한마디가, 문제를 바라보는 시점을 바꿔 줍니다. 그 말 안에는 사람이 실제로 겪은 경험과, 그 경험이 놓여 있던 맥락을 이해하면서 생겨난 통찰, 즉 휴먼 디테일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해하기 어려웠던 선택도, 당시 어떤 조건 속에서 어떤 판단이 필요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면 납득 가능한 맥락으로 전환됩니다. 문제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해석하는 기준이 달라지는 순간입니다.


왜 큰 회의에서는 디테일이 사라질까?

많은 사람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는 말이 자연스럽게 정제됩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공유해도 무리가 없는 표현이 우선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합의된 방향이나 조직적으로 안전한 문장, 책임 소재가 분명한 이야기들이 중심이 됩니다. 반대로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거나, 시행착오가 포함된 경험의 맥락은 설명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되어 쉽게 테이블 위로 올라오지 못합니다.

옥스포드 핸드북에 실린 사회심리학자 맥카티와 카라우의 연구에서는 이를 사회적 억제(Social Inhibition)라고 설명합니다.1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는 상황에서는 발화가 최소화되고, 불확실한 설명이나 개인적인 경험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는 것인데요. 그 결과 회의는 매끄럽게 진행되지만, 판단이 형성된 배경이 공유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의 실마리는 늘 '작은 대화'에서 발견된다
많은 사람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 사회적 억제가 높아지며, 발화가 조직적으로 안전한 표현 위주로 정제됨.
문제의 실마리는 늘 '작은 대화'에서 발견된다
소수 대화에서는 사회적 억제가 낮아지며, 정제되지 않은 경험의 맥락이 드러남.

디테일은 정보가 아니라 해석의 기준이다

작은 단위의 소통에서는 대화의 초점이 조금 다릅니다. 직급이나 역할을 설명하는 말보다, 실제로 어떤 상황을 겪었고 그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자연스럽게 중심에 놓입니다. 이 과정에서 결과만을 요약하는 말보다,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흐름과 맥락이 함께 드러납니다.

이런 휴먼 디테일은 문제를 바라보는 해석의 기준을 맞춰 주는 역할을 합니다. 같은 결과를 두고 서로 다른 이해를 하고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왜 그런 선택이 가능했고 어떤 조건이 작용했는지를 차분히 공유하게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논의는 각자의 결론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무엇을 다시 살펴봐야 하는지, 어디부터 풀어가야 하는지가 점점 또렷해집니다. 문제는 보통 이 지점에서부터, 해답을 향해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디테일이 이어지게 돕는 오피스 공간

이런 변화는 사람들의 대화 방식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업무 공간 역시, 작은 단위의 소통이 작동하는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스마트오피스’와 ‘자율좌석제’에 대한 문의는 매우 활발했습니다. 다양한 부서의 사람들이 섞여 앉으며 소통 기회를 늘리고, 창의성을 높이자는 기대 속에서 빠르게 확산된 제도였습니다. 특히 2020년 팬데믹 이후, 공간 효율과 유연한 근무 방식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자율좌석제는 하나의 표준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다소 달라졌습니다. 2023년을 정점으로, 자율좌석제를 도입하거나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자율좌석제가 실패했다는 신호일까요?

자율좌석제를 전제로 한 업무 환경 설계는 22~23년을 정점으로, 최근 다시 감소하는 흐름을 보인다.

저희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자율좌석제는 여전히 공간 활용도를 높이고, 팀 간 사일로를 완화하며, 조직의 경직성을 낮추는 데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다만 운영 경험이 쌓이면서, 소통이 어떻게 이어지는가에 대한 한계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자율좌석제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공간 전반에 흩어져 앉게 됩니다. 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가능성을 높이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의 맥락과 판단 기준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기에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협업이 잦은 구성원들이 가까운 범위 안에 머무는 환경에서는, 방금 나눈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 훨씬 수월합니다. 굳이 회의를 새로 잡지 않아도, 자리 근처에서 이어지는 짧은 대화 속에서 판단의 맥락이 유지됩니다. 일상적인 상황 설명이나 경험에서 비롯된 노하우 같은 휴먼 디테일은, 일정한 거리 안에서 반복적으로 이어질 때 더 잘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정답보다 해석과 조율이 중요한 지금의 업무 환경에서는, 이런 작은 연결의 순간이 일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양한 접점이 필요한 업무에는 자율좌석제가, 긴밀한 논의와 협업이 필요한 경우에는 고정좌석제가 활용된다.

작게 모인다는 것의 의미

작게 모인다는 것은, 단순히 소통에 참여하는 인원을 줄인다는 것보다는 소통의 밀도를 높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한 명 한 명의 발화 기회를 늘리고, 눈치를 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결과보다 과정까지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대화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무엇을 결정할 것인가보다, 왜 그런 선택이 필요했는지가 먼저 이야기됩니다. 정제된 결론보다,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맥락이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그 과정 속에서 문제를 이해하는 관점이 맞춰집니다.

그래서 작게 모인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라기보다,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시작하는 자리에 가깝습니다. 디테일이 흩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을 때, 같은 문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작게 모여야 보이는 디테일들은 결국, 조직이 문제를 바라보는 출발점을 조금씩 바꿔 놓습니다.


1McCarty, M., & Karau, S. (2017). Social inhibition. In S. G. Harkins, K. D. Williams, & J. Burger (Eds.), The Oxford handbook of social influence. Oxford University Press

Editor
퍼플식스 스튜디오 강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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